나무에새긴팔만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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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영희와철수 조회 13회 작성일 2020-12-03 00:13:4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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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지 않는 팔만대장경의 비밀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최태성][별별 한국사] [5분클립] 목판에 새긴 간절한 소망, 팔만대장경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18일.
당시 공군 편대장 김영환 중령에게 떨어진 명령.

""해인사 인근에 숨어 있는 인민군 진지를 폭격하라.""

그러나 김영환 중령은
""숲이 짙어 적을 판별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폭격을 거부하였고
결국 명령 불복종 죄로 군의 처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상부의 명령을 거스르면서까지
그가 지켜내고자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나무에 혼을 불어넣는 장인, 각자장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긴 목각판을 각자 또는 서각이라 하는데, 인쇄를 목적으로 할 경우에는 목판본이라 한다. 각자는 가장 오래된 목판본으로 알려진 신라시대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과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목각판인『팔만대장경』이 만들어 지는 등 사찰을 중심으로 최 전성기를 이루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그 기술이 전해져 훈민정음 원본을 비롯한 많은 목판 인쇄물이 간행되었다. 각자장의 기량은 각질의 흔적, 글자체의 균형도, 잘못된 글자나 글자획이 빠진 것 등으로 가늠한다. 한편 각종 궁궐의 건물이나 사찰·사가의 건축물에도 나무에 글자를 새려 현판(顯板)을 거는 일이 일반화 되어 대부분의 건축물에는 현판이 걸리게 되었다. 여기에 각을 하는 작업 역시 각자장의 일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06호 각자장 김각한)
[영문버젼 보기(ENG ver.) Gakjajang, the master who instills a soul on the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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